책소개
한유의 서간문은 수신인에 따라 각기 다른 말투와 형식을 사용했고, 주제의 설정이나 편장(篇章)의 구성 또한 작품마다 달라 변화의 묘미를 극도로 추구해 예술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용 면에서는 통상 세 부류로 분류한다. 첫째는 문학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 것이고, 둘째는 친구나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서를 터놓고 이야기한 것이며, 셋째는 정계의 유력 인사에게 발탁 또는 천거를 요청한 것이다.
문학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 서간문은 대부분 후학들이 가르침을 요청한 데 답하기 위해 쓴 것이다. 한유는 서간문을 통해 자신이 제창한 고문운동의 취지를 천명하고, 자신이 고문 학습과 창작 과정에서 겪은 소중한 체험을 청년들에게 일러 줌으로써 그들의 고문 창작을 지도하고 있다. 스승의 위치에서 후학의 물음에 답하는 글이면서도 한 수 가르쳐 준다는 거드름 피우는 태도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진솔하고도 정성스럽게 일러 주고 있다.
막역한 친구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글은 깊은 우정이 흘러넘치는 한편,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과 억울한 심정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하든, 회재불우(懷才不遇)의 정서를 토로하든, 친구에게 위로와 권면 또는 비판을 하든, 가식적인 언사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정계의 유력 인사에게 발탁 또는 천거를 요청한 편지글은 자기 자신을 천거한 것과 제자나 친구를 천거한 것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자신을 천거한 편지글에는 고관인 수신인을 과도하게 추켜세우고 관직을 구하기에 급급한 작자의 심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고 글의 표현 또한 절박한 작품도 있어 후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성심을 바탕으로 정계의 유력 인사에게 논리 정연하고 정정당당하게 접근한 흔적도 적지 않다. 자신의 제자나 친구를 천거한 작품들은 글에 힘이 있고 언어가 간절하며 솔직한 심정을 담고 있어서, 재주를 품고도 실현할 기회를 만나지 못해 실의에 빠진 지식인들을 진정으로 돕고자 하는 바람을 잘 표현했다. 특히 이 부류의 글들은 곧이곧대로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뜻을 전해야 하는 관계로 문학적 기교가 높은 수준에 달해 글의 구상이나 언어 구사에 예측불허의 우여곡절과 변환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인간사는 날로 복잡다단해지고 세상살이 또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장고를 거듭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서 가려 쓴 옛사람들의 편지글이 더욱 그립지 않은가? 대문호 한유가 긴 호흡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 쓴 편지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200자평
한유의 서간문은 현존하는 문집 내에 50여 편이 남아 전한다. 이 책에서는 한유의 문집 원본에 들어 있는 서간문 50편 전부를 번역하고 간단한 작품 해설과 주석을 붙였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고문운동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한유. 그의 편지에는 문학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에 괴로워하고 과거 낙방에 좌절하며 친구의 불행에 슬퍼하고 제자를 아끼는 한 인간으로서의 한유의 모습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당대의 명문가답게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과 함께 인간 한유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지은이
한유는 당나라 대종(代宗) 대력(大曆) 3년(768)에 태어나 목종(穆宗) 장경(長慶) 4년(824)에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자는 퇴지(退之)이며 하남성(河南省) 하양(河陽, 지금의 하남성 孟縣) 사람이다. 본관이 창려(昌黎, 지금의 하북성 徐水縣 서쪽)여서 스스로 ‘창려 한유’라고 칭했고 세상 사람들도 그를 ‘창려선생’이라고 불렀다.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냈다 하여 한이부(韓吏部)라고도 불리며, 사후 문(文)이라는 시호를 얻어 한문공(韓文公)이라고도 불린다. 유종원(柳宗元)과 더불어 당나라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꼽히며, 당시 유행하던 시문(時文)에 반대하여 고문(古文)을 일으켜, 후에 송나라의 대문호 소식(蘇軾)에게 “문장으로써 8대 동안의 쇠미했던 풍조를 진작시키고 도의로써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천하를 구제하였다(文起八代之衰, 道濟天下之溺)”는 칭송을 받았다.
옮긴이
이종한은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립 대만사범대학(國立臺灣師範大學)과 미국 미네소타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객원 연구교수를 지냈다. 계명대학교 교무부처장과 명교생활관장을 거쳐 2012년 현재 인문대학 학장으로 있으며, 인문과학연구소 내 ‘동서양고전읽기’ 작업의 일환으로 ‘장자읽기 세미나’를 주도하고 있다. ≪한유 산문의 분류와 의론산문≫, ≪한문 문법의 분석적 이해≫, ≪두보 시선≫, ≪당송 산문선≫, ≪중국산문간사≫(공역) 등의 저·역서와 <역대논시절구연구(歷代論詩絶句硏究)>, <한유 산문의 분석적 연구>, <한국에서의 한유 평가에 관한 연구>, <한중 양국의 ≪논어≫ ‘지(之)’ 자 해석에 관한 비교 연구>, <전문 문인으로서의 한유>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올바른 글쓰기
문장을 논하여 풍숙에게 보내는 편지(與馮宿論文書)
이익에게 답하는 편지(答李翊書)
재차 이익에게 답하는 편지(重答翊書)
울지분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尉遲生書)
이사석 수재에게 답하는 편지(答李秀才書)
진상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陳生書)
진상에게 답하는 편지(答陳商書)
유정부에게 답하는 편지(答劉正夫書)
제2부 친구야 제자들아
[친구]
후계에게 답하는 편지(答侯繼書)
최입지에게 답하는 편지(答崔立之書)
장적에게 답하는 편지(答張籍書)
재차 장적에게 답하는 편지(重答張籍書)
이고에게 보내는 편지(與李翶書)
맹동야에게 보내는 편지(與孟東野書)
위중행에게 보내는 편지(與衛中行書)
최군에게 보내는 편지(與崔羣書)
풍숙에게 답하는 편지(答馮宿書)
악주자사 어사중승 유공작에게 보내는 편지(與鄂州柳中丞書)
재차 악주자사 어사중승 유공작에게 보내는 편지(再與鄂州柳中丞書)
화주자사 이강 상서께 보내는 편지(與華州李尙書書)
공부상서 맹간에게 보내는 편지(與孟尙書書)
여의 산인에게 답하는 편지(答呂毉山人書)
[제자]
두존량 수재에게 답하는 편지(答竇秀才書)
양경지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楊子書)
[기타]
감찰시어사 원진에게 답하는 편지(答元侍御書)
시어사인 은유에게 답하는 편지(答殷侍御書)
경조윤이 어사대에 인사하러 가지 않는 것에 관해 친구에게 답하는 편지(京尹不臺參答友人書)
유주자사 이방고에게 답하는 편지(答渝州李使君書)
제3부 인재를 뽑아라
[자천(自薦)]
관리 임용 시험을 치를 때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應科目時與人書)
봉상절도사 형군아 상서께 보내는 편지(與鳳翔邢尙書書)
재상께 올리는 편지(上宰相書)
열아흐레 뒤에 다시 재상께 올리는 편지(後十九日復上書)
스무아흐레 뒤에 다시 재상께 올리는 편지(後廿九日復上書)
양양에 주재 중이신 우적 상공께 보내는 편지(與于襄陽書)
이실 상서께 올리는 편지(上李尙書書)
급사중 진경에게 보내는 편지(與陳給事書)
병부시랑 이손께 올리는 편지(上兵部李侍郞書)
양양 우적 상공께 올리는 편지(上襄陽于相公書)
상서 정여경 상공께 올리는 서계(上鄭尙書相公啓)
유수 정여경 상공께 올리는 서계(上留守鄭相公啓)
다른 사람의 대필로 천거를 요청하는 편지(爲人求薦書)
[타인 천거(薦人)]
호직균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胡生書)
사부원외랑 육참에게 보내는 편지(與祠部陸員外書)
장적을 대신해 절동관찰사 이손에게 보내는 편지(代張籍與李浙東書)
원자 상공께 보내는 편지(與袁相公書)
[기타]
서주 장건봉 복야께서 흰 토끼를 잡은 것을 하례드리는 편지(賀徐州張僕射白兎書)
우복야 장건봉 각하께 올리는 편지(上張僕射書)
우복야 장건봉 각하께 올리는 두 번째 편지(上張僕射第二書)
정여경 상공께 보내는 편지(與鄭相公書)
위박절도사 전홍정 복야께 답하는 편지(答魏博田僕射書)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문장의 기세는 물이요, 글은 물 위에 뜨는 물건입니다.
물살이 드세면 뜨는 물건은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다 뜹니다.
문장의 기세와 글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문장의 기세가 왕성하면 어구의 장단과 성조의 높낮이가 모두 잘 어울리게 됩니다.